51. 위나라 무왕의 돌아가신 장인이 결초보은하였다.
『좌전(左傳)』 선공(宣公) 15년 조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위(魏)나라 무왕(武王)에게는 반달처럼 아름다운 애첩이 있었는데, 무왕은 그녀를 무척 사랑하여 항상 곁에 두고 보고 싶어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무왕이 병석에 누워 죽음이 임박하자, 그의 아들 과(顆)를 불러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이 애첩(후궁)을 젊은 남자에게 시집 보내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여라. 이는 사랑하는 애첩이 혼자 살면 고생할 것을 염려하여 사랑하는 뜻에서 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병세가 점점 악화되자 무왕은 다시 아들 과를 불러
“이제 나는 다시 살지 못하겠다.
내가 죽거든 이 애첩을 나와 함께 장사 지내 달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무왕은 숨을 거두어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들 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난감했다.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면 불효자가 될 것이고, 눈이 맑고 말갛던 작은 어머니를 죽인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선왕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받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 함께 장사 지내 달라는 말씀은 죽음이 가까워져 정신이 혼미할 때 하신 말씀이었고, 젊고 정신이 맑을 때 하신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내 행복하게 살게 하라”는 말씀이 있으니, 정신이 맑을 때 하신 말씀대로 개가(改嫁)를 시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장사를 치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땅한 혼처를 찾아 개가를 시켰다.
하지만 중신들 사이에서는
“새 왕은 불효자다.
선왕의 유언을 어기고 후궁을 개가시켰다.”라며 하나둘 임금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에 과는 중신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했다.
“선왕의 유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씩씩한 젊은이에게 개가를 시켜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함께 장사지내 달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유언에도 선후가 있고, 먼저 한 유언은 정신이 맑을 때 하신 것이며, 뒤의 유언은 죽음이 두렵고 정신이 혼미할 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한 유언이 선왕의 참뜻인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이다.
중신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모든 중신들이
“대왕은 참으로 효자이시다.”라며 흩어졌던 중신들이 다시 모였다고 한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진(秦)나라 두희가 전란을 일으켜 쳐들어왔다.
양편 군사가 싸우다가 무왕의 아들 과의 편이 전세가 불리해져 후퇴하게 되자, 진나라 두희 군대는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과가 군사를 거느리고 한참 쫓기다가 뒤가 조용하여 돌아보니, 추격해오는 적군 앞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이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풀끝을 묶어 흘릉개(풀을 묶어 덫을 만드는 것)를 놓고 있었다.
노인은 비록 늙었으나 풀을 묶는 데는 번개처럼 빠르고 비호처럼 날쌌다.
두희는 이쪽 군대가 후퇴하는데도 사기가 충천하여 군대를 재촉해 돌격 명령을 내렸으나, 달려오다가 풀로 만든 덫에 걸려 제 몸에 데굴데굴 굴러 넘어지고 말았다.
이를 본 과의 군대가 다시 추격하여 두희 군대를 거의 몰살시키고 승전고를 울렸다.
그 노인을 찾아보았으나 온데간데없이 자취가 사라졌다.
그 뒤 밤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당신이 개가시켜준 후궁이 내 딸인데, 돌아가신 부왕의 유언을 어기고 나의 여식을 살려 개가시켜준 은혜를 생각하여 어떻게 결초보은(結草報恩)할까 고민하였는데, 이번에 갑자기 두희 군대가 쳐들어와 결초보은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고사성어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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